게임 기획자에 대한 오해
이번엔 게임 기획에 대한 오해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볼까 한다.
학원 수업을 할 때 만났던 학생이 첫 수업에서 했던 질문이 있다.
“선생님. 이 수업 다 받으면 제가 만들고 싶은 게임 만들 수 있는 것인가요??”
대체 무슨 소린가 했다. 집에 돈이 많은가. 아버지가 회사 차려 주시나? 아니면 기껏 비싼 돈 들여 학원 수업 받아서 혼자 만들라 그러나. 별의 별 생각이 다 들다가 다시 질문을 했다.
“아버지가 돈 많으셔서 회사 차려 주신다고 하시나요?”
당연히 아니었다. 그리고 몇번의 질답으로 게임 기획자에 대한 단단한 오해가 있음을 알게 됐다. 물론 이 글을 읽는 사람들도 혹시나 비슷한 오해가 있지 않나 싶어 언급하고 넘어가려 한다.
첫번째. 게임 기획자는 게임에 대한 모든 부분을 혼자 결정한다?
- 뼈대와 규칙을 설계하고 결정하는 것은 기획자의 몫이 맞지만 결코 모든 부분을 혼자 결정하진 않는다.
- 게임이 개발되는 프로세스는 상당히 복잡하다.
- 예를 들어 우리집에 3D 프린터가 있다고 치자. 3D 프린터로 그럴싸한 물건을 만들 수 있을까?
- 답은 NO.
- 디자인이 필요 하고 디자인을 하기 전에 3D 프린터로 만들어 낼 물건이 어떤 용도인지를 생각하고, 그 용도에 따라 필수적으로 필요한 구성을 고민하고 난 후에 디자인을 하는게 일반적인 순서일 것이다.
- 간단하게 3D 프린터로 물건을 찍어 내는 것도 이정도로 고민할 것들과 필요한 기술이 여러가지인데 게임은 어느 정도 일까?
- “기획자가 기획서를 쓰면 디자이너가 디자인 하고 프로그래머가 구현하면 돼잖아요?” 라는 질문은 게임 기획자 지망생들에게 흔하게 듣는 질문이다. 맞다. 아주 정확한 흐름이다. 그러나 기획자가 기획서를 쓸 때 디자이너가 디자인을 할 수 있는 충분한 소스를 가이드 해 줘야 하고, 프로그래머들이 구현하기 위한 정확한 규칙을 정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혼자가 아니라 각 파트 (디자이너, 프로그래머) 작업자들과 수 없이 많은 토론과 생각 공유가 필수다.
- 기획자는 전체적인 FLOW 를 결정하고 실 작업자, 혹은 동료 기획자 들과 게임의 방향에 맞는 기획인지를 고민하고, 그 범위 안에서 설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 예를 들어 우리집에 3D 프린터가 있다고 치자. 3D 프린터로 그럴싸한 물건을 만들 수 있을까?
두번째. 게임 개발의 수장이다?
- 아직도 이런 생각하는 사람이 있나 싶다.
- 그런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아니다.
- 기획자가 개발의 수장인 경우는 기획팀장이 회사에서 가장 힘이 셀 경우, 사장님이 직접 기획팀을 리딩할 경우, PD님이 기획자 출신일 경우가 있다.
- 나도 경력 초창기에는 비슷한 생각을 하곤 했다. 그래서 겁없이 이사람 저라람들과 큰 소리내며 싸우기도 많이 싸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진짜 부끄러운 과거다. 당신은 그런 부끄러운 흑역사를 만들지 않길 바란다.
- 일반적으로 기획자는 개발팀의 수장이 아니다. 개발팀 전체의 방향이 흔들리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대화하고 문제가 있을 경우에 대응하는 기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 집에 세워진 기둥이 집의 구조에 영향을 끼칠지언정 집 전체의 디자인을 좌지우지하거나, 배관 등의 기능적인 부분을 강제하지 않는다.
세번째.기획자는 맨날 야근한다?
- 개발 단계에 따라 다르고 회사 분위기에 따라 다르다.
- 하지만 사실상 기획자가 야근할 일이 가장 많은 직군이기는 하다.
- 시스템 개발을 위해 기획서를 쓰고, 기획서가 완료 되면 이전에 기획서를 쓴 후 구현이 완료된 시스템에 데이터를 입력하고 확인하는 과정 등 모든 일의 시작과 끝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 과거에는 그냥 야근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 느즈막히 출근해서 밍기적거리다가 해질무렵부터 일을 시작하는 문화를 갖고 있는 회사도 있었다.
- 하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그렇고, 당장 나 조차도 마찬가지다. 예전처럼 그냥 하는 야근은 없다. 중요한 이벤트 (빌드 배포 등)가 있을 경우를 제외하고는 크게 야근을 하지는 않는것 같다.
- 물론 지금 이시간에도 야근을 하다가 잠깐 짬내서 이 글을 읽으며 “뭐라는 거야 미친놈이”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앞서 말했지만 야근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변수가 있다.
네번째. 게임 기획은 상상력을 현실로 만드는 일인가?
- 일부는 맞다. 하지만 일부는 아니다.
- 게임 기획은 사실상 설계하는 일이 더 많다.
- 실제 기획은 치밀한 구조로 설계하고 그 설계안에 조금 더 재미 있을 수 있도록 아이디어를 넣는 작업이다.
- 예를 들자면 아파트를 짓고 아파트 마당에 어떤 시설을 놓을지, 집 안에 어떤 크기의 티비를 놓을지 등을 결정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 게임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상상력은 비전이나 방향성 등으로 상당히 많이 정제 된다.
- 물론 이 단계에서는 굉장히 많은 아이디어가 오가기도 하고 그로 인해 게임의 방향이 결정되기도 한다.
- 이 이후의 일은 거의 막노동에 가까운 두뇌 노동에 가깝다.
- 그렇다면 게임 기획자들에게 상상력을 키우라고 하는 말들은 헛소리인가?
- 그렇지 않다. 앞에서도 이야기 했듯. 게임 기획자들에게 상상력이란 것은 필수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 아무런 방향이 없는 상상력은 망상이다. 게임 기획자는 정해진 방향과 의도를 기반으로 아이디어를 뽑아내고 그것을 로직화 시키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 뛰어난 상상력만을 갖고 있는 사람이 게임 기획자로써의 자질이 높다고 할 수 있냐는 질문을 한다면. 나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게임 기획자에게 상상력은 기본 소양이고 자질이다.
- 개인적으로는 상상력보다는 분석력이 더 가치있는 자질이라고 생각한다.
- 머리가 좋은 애들은 기획도 잘한다.-_-
다섯번째. 기획서만 잘 써 내면 된다?
- 기획자의 소양은 단순히 기획서만 잘 쓴다고 끝나는건 아니다.
- 다양한 사람들과 의견을 조율함에 있어 적당히 내 의견을 필역하고 상대방의 의견에 반박할 수 있는 유연성과 논리력은 필수다.
- 꽤 높은 비율의 기획자들이 본인이 즐기는 게임에서 재미 있던 점을 내가 만드는 게임의 방향성과 상관 없음에도 불구하고 기획을 반영하려는 경우가 있다. 이들은 그 어떤 논리도 없으며 상대방이 논리적으로 반박한다고 해도 왠만해서는 양보하려하지 않는다.
- 기본적으로 기획의 영역은 문서를 써 내는 것이지만, 애초에 같은 우주에 사는지도 모르는 다양한 사람들에게 재미를 끌어낼 수 있는 보편적인 시스템을 설계해야만 한다. 나와 내 주변의 사람들이 재미 있다고 느끼는 것이 모든 사람들에게 같은 수준의 재미일 수는 없다.
- 게다가 기획서가 뭔지 부터 정확히 알아야 기획서만 이라도 잘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이 과정은 다음 편으로 이어진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잡소리가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지만 기본적인 마인드가 세팅이 되지 않으면 그 어떤 공부를 한다고 해도, 성장이 더딜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실제 공부 전에 잡소리를 자꾸 하게 된다.
(이래서 같이 근무하는 주니어 기획자들은 내가 잔소리 하는걸 굉장히 싫어한다 -_-… 얘들아 미안.)
자 그럼 여기까지 서론은 마치고 다음 포스팅 부터는 진짜 공부를 시작하자.
다음 포스팅에서도 만나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