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기획 이야기 첫번째

첫번째 글입니다.

모든 공부의 시작은 내가 어떤 유형인지를 파악하고 그에 어울리는 공부를 하는게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초급 첫번째 편에서는 어떤 사람들이 게임 기획자라는 직무에 어울릴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나 자신은 어떤 유형인지를 생각해 볼 수 있도록 몇가지 예시를 들어볼 생각이다.

교육기관에서 수업을 진행하다 보면 다양한 유형의 기획자 지망생 혹은 주니어 기획자들을 만나게 된다.

(생각보다 실무를 하고 있는 주니어 기획자들 -1~3년차 정도- 수업을 들으러 많이 온다)

이 포스팅에서 구분을 나누는 유형은 지극히 개인적인 기준으로 나눴음을 미리 밝힌다.

첫번째. 네추럴본 기획자

<출처 : google 이미지 검색>

어릴때부터 게임을 만들어 보고 싶어서 무던히 노력하는 유형. 수업 초기에 그동안 자신이 썼던 엄청난 분량의 문서를 가져와서 읽고 리뷰를 해주길 희망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실 그들이 작성한 문서들은 기획서라기 보다는 아이디어를 두서없이 정리해 놓은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런 자료들은 상당히 고무적이다. 나도 게임 기획자 시절에 작성한 문서들이 링노트로 13권 정도 된다. 가끔 사는게 팍팍하고 그만두고 싶을때 고향집에 내려가 그 노트들을 읽어 보면 힘을 얻곤 한다. 물론 노트를 읽는내내 손발이 오글거리고, 대체 십여년전에 나라는 놈은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생각이 든다.

 어쨋든. 이 유형의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습득 속도가 빠르다. 그동안 본인이 고민하던 것들을 기반으로 한발짝 더 나아가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상당히 빠르게 성장한다. 하지만 그만큼 독이 되는 경우도 있다. 스스로 공부하고 정리 하면서 정립했던 어떤 기준이 무너지면 높은 확률로 고장난다. -_-;;

 하지만 이 역시 의지와 열정이 있는 상태라 내상 회복이 빠르다. 본인이 이런 타입이라면 진짜 나 죽었구나 생각하고 덤벼들어보기 바란다.

두번째. 글쟁이

판타지 소설 등의 글을 많이 쓰던 경험이 있는 유형. 일부 진짜 실력이 있는 글쟁이들이 있지만 보통은 아마추어 판타지 소설 작가들이 많다.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글을 문학적으로 접근하던 사람들이라 학습이 상당히 어렵다. 담백한 서술이 아니라, 화려하게 꾸미는 일에 익숙한 글을 써 오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글쟁이는 왜 이렇게 고급스러운 이미지일까?

 사실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기획자로써의 학습이 상당히 어렵다. 어떤 상황을 서술하고 생각할때 로직적인 흐름 보다 눈에 보이는 흐름을 먼저 떠 올리기 때문이다. 

 본인이 기획자 지망생이거나, 주니어 기획자라면 지금 당장 본인이 작업한 기획서를 꺼내서 읽어 보길 바란다. 분명 UI에 대한 설명이 대부분일 것이다. (뜨끔하다면 당신은 이 유형일 가능성이 높다)

 글쟁이 유형이 아니라도 기획서에 무엇을 써야할지 모르기 때문에 UI 설명으로 문서를 가득 체운다. 문서를 읽으면 어떤 모양으로 이 기획서에 써진 시스템이 사용자에게 보일지는 유추할 수 있으나, 실제로 개발을 위한 로직은 어디에서도 찾기 힘들다. 이런류의 문서들이 프로그램팀에 넘어가게 되면, 프로그래머는 비슷한 UI 를 갖고 있는 게임중 자신이 경험해 봤던 게임을 기준으로 문서를 읽게 된다. 그 결과는 기획자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시스템이 나오게 된다. 연쇄작용으로 프로그래머가 논리적인 오류가 있음을 지적할 확률이 높아진다. 프로그래머 본인이 머리속에 그리고 있는 시스템의 로직과 기획서의 UI 가 다를 경우 충돌하는 부분을 논리적 오류라고 인지하고 기획자를 쪼기 시작한다. 결국 기획자는 프로그래머가 원하는 방향으로 기획서를 수정하게 되고, 이는 기획이 산으로 가는 아주 자연스러운 흐름을 갖게 된다. 게다가 이런일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면 기획자는 문서 수발꾼이 된다.

 그렇다면, 글쟁이 유형의 사람은 기획자로써의 미래가 없을까? 그렇지 않다. 기본적으로 글을 쓰는 경험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생각하는 방향을 기획자적 마인드로 잡을 수 있다면,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게 된다.

 글쟁이 유형의 사람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비슷한 문제를 갖고 있을 경우에 생각의 방향을 수정하는 것만으로도 제대로 된 (필요한 내용이 들어 있는) 기획서를 쓸 수 있다.

 하지만 단언컨데 쉽지는 않다. 짧게는 몇달, 길게는 몇년동안 갖고 있던 생각하는 방식을 바꾼다는것이 쉬울리가 없다. 중간에 그만두지 않을 각오를 갖고 공부를 하는 것이 좋다.

 개인적으로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전문 교육기관에서 교육 받는 것을 추천한다.

세번째, 게이머

게임 폐인

사실 팀을 리딩 할 때나 교육기관에서 수업을 진행할 때 게이머 유형의 사람들이 가장 힘들다.

 이들은 정확한 지식이 없는 상태로 굉장한 신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어떤 게임을 굉장히 오랫동안 즐겼거나, 콘솔게임이 진짜 게임이지, 온라인 게임이나 모바일 게임은 게임이 아니야. 라는 식의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심각해진다. 실제로 내가 수업을 할때 가장 빨리 포기하는 유형의 사람들이 바로 게이머 유형이다.

 이들은 게임을 로직적인 관점이 아니라 본인이 게임을 플레이 하면서 느꼈던 아쉬운 점들을 기준으로 살을 덧대는 형식의 기획을 주로 한다. 살을 덧댄다는 것은 불편한 것을 내 입맛에 맞도록 쉽게 바꾸는 아이디어가 곧 좋은 기획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방식의 기획이 위험한 이유는 게임이 만들어질 때 세워졌던 방향성, 기획 의도등이 무시된다는 것이다. 기획 의도나 방향성은 게임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것인데 이것과 상충될 경우 게임에서는 그것을 소화시키지 못하게 된다. 

예를 들어 어떤 게임을 즐길때 할것이 엄청나게 많은데 뭔지 모르게 연결이 되지 않는 것 같은 느낌. 그 느낌이 게임의 방향성이나 기획 의도와는 상관 없는 것들이 덧입혀진 상태로 만들어진 게임의 현실이다.

이 유형의 사람들은 게임에 대한 높은 이해력과 다양한 게임의 경험을 바탕으로 게임을 기획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진지하게 공부하다가 가장 빨리 포기한다. 본인이 알고 있거나 생각했던 것과, 개발은 다른 차원이라는 문제를 가장 빨리 깨닳는 유형이기도 하다.

 본인이 이런 유형이라면 포기하기를 권장한다. 개발자와 게이머의 시각은 사실상 극복하기 어렵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다면, 상당한 경지에 오를 수 있다. 근데 포기하지 않는게 진짜 어렵다. 신입시절 선배들이 얼마나 게임을 좋아하면 만들어 왔겠냐 라는 농담을 하곤 했다. 그때는 그게 칭찬인줄 알았다. 근데 이제서야 그게 칭찬이 아니라는 것을 깨닳았다.

네번째, 이거라도.

이런 유형의 사람들도 굉장히 많다. 게임을 좋아해서 게임을 만들고 싶은데 프로그램은 어렵고 그림은 못그리니 기획을 하겠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사실 지금까지 경험상 제일 많다. 보통 자신은 아이디어가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게임 기획에 대해서 도통 진지하게 접근하지 못한다. 어려운 기획서를 쓰고 데이터를 다루는 일이 자신이 하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나중에 게임 기획자에 대한 오해. 부분에서 다루겠지만, 게임 기획자는 게임 개발을 진두지휘 하는 장군의 역할이 아니다. 계획을 잡고 그 계획에 따라 설계하고 설계에 따라 제대로 만들어지는지 끝없이 팔로우 하고, 최종적으로 데이터를 입력하고 기능을 확인하고….. 뭐 말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을 것 같아서 그만..

 이 유형의 사람들은 본인의 한계점을 넘어서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평소 아이디어가 많은 사람이라 다양한 아이디어로 무장한 반짝이는 “신입”으로 인정받을 순 있으나, 한계점을 뛰어 넘지 못한다면 거기서 끝이다. 교육기관에서 수업을 할때 이런 학생들이 많으면 수업의 진도가 상당히 더디게 진행된다. 왜냐하면 수업내용이 생각했던것과 너무나 달라서 아주아주 쉽게 설명해도 이해를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 4년전에 s 모 학원에서 수업 들었던 너… 하… 밥은 먹고 다니냐)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한계점을 뛰어 넘지 못하는 경우가 100% 냐? 그렇지도 않다. 실제로 나와 공부 했던 학생중에 한명은 초반 한달간 죽을만큼 힘들어 하다가 수업 끝나고 있었던 간단한 술자리에서 내 아이디어는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쓰래기다. 라는 충격 발언을 시작으로 엄청나게 성장하는 것을 지켜본적이 있었다.

 본인이 이거라도 유형의 사람이라면 일단 본인의 머리를 백지화 시키고 시작하는 것을 추천 한다. 학원을 다니고 있다면 당신을 가르치는 강사가, 회사에 다니고 있다면 당신의 팀장은 당신에게 반짝이는 아이디어을 원하는게 아니다.

첫 포스팅에서는 게임 기획자 지망생의 유형에 대해서 이야기 해 봤다.

글을 천천히 읽어 보고 본인이 어떤 유형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하길 바란다.

이런 저런 안 좋은 예시들을 잔뜩 들었지만, 예시를 들은 이유는 말 그대로 예를 들은 것일 뿐.

본인이 어떤 유형에 속하던지 포기하지 않는다면, 포기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충분히 훌륭한 게임 기획자가 될 자질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음 포스팅에서 만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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