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입사 했는데 전임자가 3일 뒤에 퇴사한데.
그렇다면 나는 내일 퇴사 해 볼까?
인수 인계는 왜 필요 할까?
전임자가 진행 하던 업무를 1:1로 받아서 진행 하게 될 경우 유관 부서 (혹은 작업자)의 작업이 문제 없이 진행될 수 있어야 하고, 내 부서의 업무도 정체가 생기지 않기 위해서 인수인계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회사를 그만두는 사람 (전임자) 입장에서는 과연 이 인수인계를 제대로 해 줄 생각을 할까?
모든 사람이 다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만, 꽤나 높은 확률로 전임자의 정신 상태는 위의 이미지와 같을 것이다. (나도!)
그렇다고 해서 인수인계를 받지 않는다면 오늘부터 당신과 당신이 맡을 업무의 유관부서 (혹은 작업자) 당신의 직속 상사 등 최소 3인 이상의 지옥이 펼쳐 진다고 볼 수 있다.
평소에 성실하게 일을 잘 하던 사람이라고 해도, 인수인계를 해야 할때 (=퇴사 할때)가 오면 평소와 같은 업무 태도를 유지하기는 힘들다.
아침 10시에 출근해서 커피 한잔 마시고 타 부서 인수인계를 핑계로 여기저기 회의를 빙자한 수다를 떨다 보면 점심시간, 점심 시간 끝나면 퇴사전에 처리 해야 하는 몇 가지 업무를 가지고 끙끙 거리(는 척)다가 퇴근하며 퇴사 날짜만을 기다린다. (경험담이다)
때문에 회사의 프로세스가 어떻게 만들어져 있든 문서만으로 만들어진 인수인계 자료는 작성자 (전임자) 본인에게 브리핑을 받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렵고 읽기도 어려운 문서 정도로 남아 있게 된다. (물론 브리핑을 받는다고 해서 그 문서가 진리의 책이 되진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전임자에게 직접 인수인계를 받아야 한다. 거창하게 문서를 작성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필요한 것을 정확하게 요청하고, (요청 한다고 해서 해 주지도 않겠지만) 그 중에 일부라도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면, 성공한 인수인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게임 업계의 인수인계는 뭔가 다른가?
일반적으로 게임 업계는 산업의 구조 자체가 돈을 쓰고, 또 쓰고, 또 쓰다가 한방 터트리는 구조이다 보니, 대충 월급 루팡 하다가 도망치는 경우가 많다. (본인도 경험 있음)
월급루팡 하다가 도망치는 이유가 다양하긴 하지만 그 중에 가장 큰 이유를 꼽자면, 장기간 동안 돈을 쓰기만 하고 성과가 나지 않아도 크게 책임을 묻지 않는 산업 구조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연봉이 자신의 능력보다 한참 모자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같은 이유가 아닐까 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따라서 게임 프로젝트는 문서화 되어 있는 메뉴얼 형식의 인수인계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퇴사하게 된 이유에 집중해야 한다.
“개인적인 사정일 수도 있잖아요?”
그렇다. 개인적인 사정일 경우라도 결론적으로는 비슷하니까 당신의 그 논리적인 의문을 잠시 넣어 두자.
그렇다면 전임자의 퇴사 이유는 어떻게 알아 낼 수 있을까?
바로 프로젝트의 히스토리 (History taking)를 전달 받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왜 지금 이모양 이꼴이고, 당신이 떠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려주세요.”
에 대한 답변을 듣는 것이 IT 업계의 정석적인 인수인계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일반적인 회사의 인수인계 = 현재 진행되고 있는 업무의 진행 상태, 유관부서의 담당자, 진행 상태 등
IT 회사의 인수인계 = 프로젝트 히스토리
경력자들은 알겠지만, 보통 새로운 회사에 진행중인 프로젝트에 투입되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존에 만들어 졌던 것들의 당위성과 효율성을 부정하는 것을 시작으로 자기증명을 시작한다.
전임자의 작업에 대한 부정은 여러가지로 효율적이다.
- 지금이라도 온 내가 짱이다. 나 밥값한다.
- 이거 망가져도 내가 어쩔 수 없다. 나는 전임자가 싸 놓은 분뇨를 처리하는 것이기 때문에 잘 못 돼도 내 책임은 없다
하지만 이 두가지는 어떤 이유를 대더라도 프로젝트에 도움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오랫동안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여러가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만들어진 지금 상태일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갈아 엎어버리고 싶더라도, 지금은 아니다.
일단 전임자에게 최고의 빌런의 정체를 미리 듣고 본인의 태도를 정의 하는 것 부터 시작해보자.
내가 인수인계 받아야 할 정보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첫번째. 우리 프로젝트의 빌런의 정체를 아는 것은 히스토리 테이킹에서 꽤나 높은 비율의 중요성을 갖는다. 하지만 전임자가 말한 빌런이 나에게도 빌런일 것이라는 색안경을 쓰고 볼 필요는 없다.
스파이더맨 홈커밍의 메인 빌런 벌쳐도 집에서는 상냥하고 책임감 있는, 지극히 딸을 사랑하는 한명의 아버지일 뿐이다.
그의 비행(非行) 역시 가정을 지키기 위함이 동기였음을 잊지 말자.
따라서 전임자가 생각하는 주요 빌런의 포지션과 업무를 파악하되, 그 감정까지 전달 받지는 말자.
(말처럼 쉽지는 않다. 맞장구쳐 주지 않으면 빌런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풀어 놓지 않는다. 인간은 생각보다 소심하다.)
두번째. 내가 담당해야 할 프로젝트가 왜 이 모냥이 됐는지에 대한 이벤트를 알아야 한다.
대부분은 빌런의 입김으로 이 상황까지 왔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겠지만, 사실 알고 보면 생각보다 높은 확률로 빌런은 특별한 짓을 하지 않는다. 생각보다 많은 빌런들은 특별히 무엇인가를 하지 않아서 문제를 일으키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가 뭐 하나 하면 그게 파급력이 클 뿐.
보통의 문제는 프로젝트 구성원들의 잘못된 판단으로 생겨나는 경우가 많다. 프로젝트 초창기부터 있던 사람들이 프로젝트의 새로운 방향성이나 새로운 시도에 대한 논의가 오가면서 자신들의 결과물들이 몽땅 날아가게 생겼을 때 삐뚤어져서 이상한 판단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따라서 현재 모습이 되기 이전, 태초의 내 프로젝트의 모습에 대해서 정확하게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
코드를 다시 살려야 하거나 기획을 살려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최초에는 어떤 기획의도나 방향성을 갖고 만들어 지고 있었으며, 어떤 시점에 어떠한 이유로 지금의 모습이 되었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다.
세번째는 빌런은 아니지만 목소리 큰 사람 (영향력이 큰 사람)이 누군지를 아는 것이다.
인수인계 꿀팁이라고 해 놓고 프로젝트의 내용보다 사람을 보라고 하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지겠지만, 게임을 만드는 일은 결국 사람이 한다. 퇴사하는 사람 역시 사람 때문에 퇴사를 결심했을 확률이 높다.
그렇다면 우리는 전임자가 말하는 빌런이나 목소리가 큰 사람이 누군지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전임자가 그러했듯, 그 삶이 앞으로 당신과 갈등을 일으킬 확률이 가장 높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비 논리적으로 보일진 모르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프로젝트에서 목소리가 큰 사람들은 생각보다 논리적이다.
하지만 그 논리는 결국 자신의 경험을 기반으로 하는 것들이 많기 때문에 우리 프로젝트의 최초 기획의도와 어울리는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들이 하는 주장은 대부분 현재의 프로젝트 상황에 맞게 이야기 하기 때문에 주장을 전개하는 방식이 논리적으로 느껴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감히 그 의견이 틀리다고 말하기 어렵다.
왜곡된 삼단논법이 그들이 쓰는 주요 무기라고 볼 수 있다.
게임 프로젝트는 이 목소리 큰 사람이 최근에 즐기고 있는 게임에 영향을 많이 받는 경향이 있다.
또한 이 목소리 큰 사람과, 빌런과 같은 편 먹고 있을 확률도 높다. 그리고 그들은 같은 경험과 생각을 공유하고 있을 확률 또한 높다.
이미 안정적으로 서비스 되고 있는 서비스의 경우 많은 것들이 검증되어 있기 때문에 그들의 주장은 거의 옳은 경우가 많다.
이들을 알아야 하는 이유는 이들의 논리적 약점을 잡아서 묵살하고 뭉개버려서 최초 게임의 기획의도를 다시 세워 팀원들 모두가 원하는 게임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최소한의 코드를 미리 맞춰보기 위해서다. 목소리가 큰 사람과 처음부터 다른 생각으로 접근해서 싸우기 시작한다면
당신의 회사 생활은 답이 없다.
결론
문서상의 인수인계 외에 전임자에게 다음의 정보를 필수적으로 전달 받자.
- 빌런의 정체 파악
- 프로젝트의 방향성이 바뀐 계기 및 바뀌기 전의 형태.
- 빌런까지는 아니지만 목소리 큰 사람
끗.